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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한국 학계 반응에 대해서

꿀잼 직지심체요절 한국 학계 반응에 대해서

https://www.dogdrip.net/369970917

 

이 글을 보면 한국 학계가 ‘감히 여자가~’ 하는 식으로 박병선 교수를 무시한 것 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과연 사실일까?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aver

네이버에서 옛날 신문을 찾아볼 수 있다.

 

직지(直指)를 검색하면 1972년도와 1973년도 기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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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1972년 6월 1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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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자체는 목판고려불경 발견이지만, ‘파리’에서 발견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조선일보의 73년 3월 14일 기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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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내용은 직지에 대한 설명이라 짤랐음.

 

이미 성균관대 교수인 천혜봉 교수가 서지학적 고증을 끝냈다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1973년 8월 21일 경향신문의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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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서 알 수 있듯 72년 5월에 박병선 교수가 발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72년 5월에 발표를 한 다음 1년 정도의 검증기간을 거친 다음 영인본(쉽게 말해 스캔본)을 발간한 것이다.

 

 

박병선 박사로 검색하면 조선일보의 72년도 12월 23일의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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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박사의 직지 발표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도서관장, 을유문화사(출판사) 기획부장, 통문관(고서 매매점)사장과 같은 서지학자들이 프랑스를 직접 방문까지 했다.

 

혹시나 사학계는 어디갔냐고 물을까봐 이야기하자면, 직지심체요절이 ‘금속활자’를 썼는지, 목판본인지가 주요 논쟁거리였기 때문에 서지학의 영역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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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ㄹㅇ 악질로 보이는게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의 역사가 바뀌는데 검증기간이 1년 정도는 걸리지 안걸리겠냐?

 

 

+)수정&추가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10414/36419670/2

 

동아일보 인터뷰 내용이다.

 

Q.(직지 발표) 당시 한국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동양학자회의 때 발표를 하고 나니, 한국의 반응은 냉담했어요. 어떤 학자는, 서지학도 안 한 사람이 왜 서지학에 손을 대느냐, 그리고 그런 고증을 한국 서지학자들도 못했는데 어떻게 네가 자신만만하게 그런 소릴 할 수 있느냐, 네가 했다고 하지만 그건 한국 학자들이 다시 보고 판단을 해야 하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한 것이라고,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교수님께서 ‘냉담’하다고 언급하셨던 만큼, 학계가 냉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에서 말씀하셨듯 서지학(박병선 교수님은 서울대 역사교육과, 이후 프랑스에서 역사학 박사, 종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나선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물론, ‘여성’이기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으리라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은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지 ‘여자가 그런 일을 했을리가 없다!’ 같은 사진을 집어넣기에는 무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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