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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도 노예이던 시절이 있다.jpg

꿀잼 백인도 노예이던 시절이 있다.jpg

https://en.wikipedia.org/wiki/White_slavery

 

‘노예’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를 많이 떠오르곤 할겁니다.

그러나 유색인종 못지 않게 고대 시대 때부터 백인 노예도 매우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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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들이 백인(유럽인)들을 노예로 부린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서기 8세기 이슬람의 우마이야(옴미아드) 왕조는 이베리아 반도(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대부분을 지배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맞붙는 과정에서 많은 백인 노예들이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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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인 노예가 본격적으로 급증한 것은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한 바르바리 해적 때문이었습니다.

 

바르바리 해적은 현재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를 중심으로 튀니지, 리비아 등지에서 활동한 아랍 해적들로서,

그들의 배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출동해 파괴, 약탈과 노예 무역을 일삼았습니다.

 

서구 문명에서는 그들을 ‘튀르크 코르세어(터키의 사략 해적)’라는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arbary_pi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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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지방에서 묘사된 백인 기독교도 노예들)

 

아랍인이면서도 ‘사략 해적’이 된 이유는 그들을 후원해준 오스만튀르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력한 제국인 오스만튀르크가 그들을 해군으로 하청해 서유럽을 견제했기에 그 기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16~19세기에 바르바리 해적들은 약 150~200만 명의 유럽 백인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남유럽이 대상이었으나, 더 나아가 영국,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까지도 진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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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수도사들이 백인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몸값을 치루는 모습)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백인 노예 무역은 매우 짭짤한 장사였습니다.

 

일단 납치한 다음에 가족 친척들을 협박해 몸값을 받고 해방시켜줘도 되고,

그게 아니라면 아랍 세계에 돈 받고 팔아넘기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노예들은 멀리 페르시아(당시 사파비 왕조, 오늘날 이란 지역), 인도, 심지어는 중국까지 팔려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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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돈키호테’의 작가로 유명한 세르반테스도 1575년 바르바리 해적에 붙잡혀 5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으며,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인 로빈슨 크루소도 이 바르바리 해적한테 잡혀 한 동안 노예 생활을 겪는것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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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복장을 한 오스만제국의 예니체리)

 

물론 노예 무역은 오스만튀르크 역시 바르바리 해적 못지 않았습니다.

 

발칸 반도 대부분을 점령한 오스만튀르크는 데브시르메라는 제도를 통해 기독교도 어린이들을 예니체리로 징집했는데,

이는 완전히 강제는 아니었으나, 가족과 떨어져서 강제로 이슬람교 개종을 당한다는 점에서 반발이 상당했습니다.

 

또한 전쟁 등의 상황으로 발생한 250만 명 이상의 남유럽, 동유럽 노예들을 각지의 노예 시장으로 공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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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유럽의 젊은 부녀자들 역시 이들의 좋은 타겟이 되었습니다.

일단 남자들에 비해 훨씬 납치하기 쉬울뿐만아닌, 백인 첩을 원하는 아랍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인 여자 노예들은 대부분 카프카스(오늘날 그루지아,아르메니아 일대), 그리고 중부 유럽 및 동유럽 지역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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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인물로 오스만제국의 전성기 이끈 술탄 슐레이만 1세의 황후 휘렘 술탄이 있겠습니다. 본래 우크라이나 지역의 정교회 사제의 딸이었던 그녀는 10대 시절 노예 사냥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타타르족에게 포로로 붙잡혀 노예가 되어 크림 칸국의 궁정으로 보내지고, 거기서 또 다시 칸국의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에게 바치는 조공으로서 수도 코스탄티니예의 하렘으로 보내진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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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시장에서 백인 여자 노예를 흥정하는 아랍인들.)

 

참고로 남자와 여자 노예의 비율이 2:1 또는 3:1이었던 대서양의 흑인 노예 매매와는 달리,

아랍의 노예 매매는 일반적으로 여자가 더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물론 집안일을 시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번식을 위해 첩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는 노예제와 일부다처제가 있던 이슬람 사회에서 이는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모가 뛰어난 노예의 경우 이슬람의 세력가들에게 매우 비싼 가격에 넘겨졌습니다.

 

특히 이슬람 세계가 유럽을 촌동네라고 업신여기고 무시하던 8~9세기 때부터 이슬람의 노예 상인들이

백인 여성들과 여자 아이들을 값이 꽤나 짭짤하게 나간다고 인신매매로 많이 거래했다고 합니다.

 

노예 하면 흑인 노예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우들이 많지만, 백인들의 역사에서 저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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